나이테

야자수에는 나이테가 없습니다. 파인애플, 바나나, 코코넛 그리고 야자수 같은 열대나무에는 나이테가 없습니다. 나이테는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날씨를 맨 몸으로 견뎌낸 씩씩한 나무들에게만 주어지는 "자연의 훈장"입니다. 나이테는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외부의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만 만들어집니다. 사계절의 요사스러운 순환 그리고 낮과 밤의 심한 굴곡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나무 속에 새겨 넣은 세월의 흔적입니다. 일 년 내내 늘어질 정도로 풍족한 태양을 공급받은 열대우림 지역에서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습니다. 변화무쌍한 외부환경의 도전에 긴장해 본 적도 없고, 저항해 본 적도 없는 나무는 나이테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는 결이 잘 휘어지고 힘이 없습니다. 건축자제나 가구용 목재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이테가 있는 나무만이 그 결이나 촘촘한 강도에 따라 최상급 목재나 고급 가구 자제로 사용됩니다.

봄과 여름에는 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의 간격이 넓고, 멀리 퍼져 있으며 색깔도 밝습니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에는 곧 몰려올 추위에 대비해서 나이테의 간격이 좁고 뭉쳐 있으며 암갈색을 띱니다. 남쪽은 햇볕이 잘 들어서 나이테가 넓고, 북쪽은 춥기 때문에 간격이 좁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 길을 읽은 나그네들은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서 다시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나이테는 매년 한 줄씩 자랍니다. 나이테를 살펴보면 그 나무의 나이와 과거의 기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이테는 그 나무의 역사를 알려주는 "호적"입니다. 나이테 없는 나무는 족보 없는 나무입니다. "상것"이라는 소리입니다. 목수들은 오직 나이테가 있는 나무만을 상대합니다. 나이테의 방향과 결을 따라 명품 가구도 만들고, 명품 악기들도 만들어냅니다. 나이테는 나무 자신에게는 그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고통의 흔적이겠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 나무의 가치와 용도를 측량하는 척도입니다.

사람에게도 나이테가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매년 아름다운 나이테가 주어집니다. 그 나이테를 따라 좋은 인격과 신앙이 형성됩니다. 좋은 환경과 여건 속에서만 지내온 사람은 마치 열대지방의 야자수 같습니다. 생산적인 작업의 도구로는 사용될 수 없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남을 포용하는 힘이 강하고, 현실을 헤쳐 나아가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고난이 재산입니다. 일부러 시련과 고난을 자처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고난이 많은 인생을 슬퍼하거나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한국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강한 이유를 굳이 뽑으라면 "고난이 많은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오늘 날의 강인함을 잉태한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순발력과 적응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다니엘 그리고 에스더 같은 인물들이 큰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이라는 나이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힘든 문제와 여건들을 아름다운 나이테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3년 1월 2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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